[40주년 축사] 코로나 캠퍼스 유감
- 작성자 장덕호 교수님
- 작성일 2021-10-14
- 조회수 2120
코로나 팬데믹이 2년 가까이 지속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 타격은 물론 심리적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인간 세계의 행복감과 만족감은 만남의 기반 위에서 작동하는 것임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서 모두 잘 알고 있다. 다윈이 얘기하는 진화론적 행복관도 그러한 논지일 것이다. 대학교육도 그러한 것 같다. 교수와 교수, 교수와 학생, 학생과 학생이 서로의 자연스러운 만남 속에서 우리는 참으로 많은 것을 배우고 익혔음을 이제야 깨닫게 된 것은 어쩌면 코로나가 안겨준 몇 안되는 선물(?)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만남과 대화가 사라진 대학은 사람의 마음을 무겁게 하고 썰렁한 캠퍼스와 빈 강의실을 볼 때마다 가슴 한켠이 허전한 것은 비단 나만의 감정만은 아닐 것이다.
하루빨리 대학이 정상화되어야 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첫째, 대학이 단순히 지식습득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식의 전달은 우리가 코로나 상황에서 경험하는 비대면 방식이 더 효율적일 것이다. 왕복 두 시간이 넘는 통학 거리를 극복하고 굳이 등교를 하는 이유는 누군가와의 소통을 통해 나의 두뇌를 자극하고 가슴을 후비는 무언가를 얻기 위한 이유일 것이다. 둘째, 자연스러운 만남이 제공하는 우연의 학습 기회가 주는 영향력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캠퍼스를 지나가다가 우연히 만난 선배가 던지는 ‘너 점심 먹었니?’라는 따뜻한 관심 표명 한마디, 그리고 지나가던 학과 교수가 ‘그 기말과제 정말 좋았어’라는 격려의 한마디로 학생은 내가 왜 이 대학, 이 학과를 다니는 이유를 깨닫게 되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비대면 수업은 이러한 대면의 소통과 잠재력을 확보하기가 힘들다. 모르겠다. 비대면이 더 편하다는 학생들도 있는 것 같다. 이번 기회에 대학수업도 비대면을 중심으로 전면적인 혁신을 추구해야 한다는 지적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대학을 학문공동체라고 하였을 때 공동체로서의 대학의 모습이 사라지고 있는 것은 틀림이 없는 것 같다. 구성원들의 일정한 소속감을 전제로 하는 공동체의 형성은 참으로 다양한 대면적 활동의 기반 위에서 가능하다. 공동체의 형성은 대학 입학 무렵에 진행되는 오리엔테이션나 엠티를 거치면서 일정한 궤도에 오르고 5월 빛나는 계절에 열리는 축제를 통해 정점을 찍는다. 이 모든 것이 소속학과의 일원으로 참여하는 각종의 행사, 회식, 장거리 여행 등을 통해 산출되는 문화의 발현일 것이다. 신입의 멤버(신입생)와 기존의 선배 멤버들(재학생)은 그러한 자연스러운 만남을 통해 모름과 어색함이라는 틀을 벗고 진정한 멤버로서의 모습을 발현하면서 우린 진정한 공동체의 일원임을 확인하게 된다. 이 번거롭고 수고로운 프로세스를 거치면서 신입의 멤버는 회원 자격을 얻고 그러한 회원 자격에 기반하여 교수든, 선배든, 동문이든 자연스러운 만남을 지속하게 되는 것이다.
사실 교수인 나에게도 이 비대면의 지속은 많은 스트레스를 주는 것 같다. 본래 학습의 장에서 가르치는 사람은 강좌를 이끌어가면서 수많은 학생들의 눈과 마주하는 것을 즐기는 존재들이다. 마주치는 눈동자들이 주는 효과는 의외로 크다. 내가 오늘 가르친 것을 얼마나 학생들이 진실로 이해했는지 판단도 해본다. 만약 눈에서 불을 보았다면 그날은 정말 보람찬 수업이었음을 느낄 것이고, 만약 졸리는 눈동자들의 생기 없는 반응을 보면서 자신의 수업에 무엇이 문제였음을 반성하게 된다. 이러한 눈동자 마주침의 연속이 바로 15주간의 수업 대장정이고 그게 바로 대학교육의 핵심 성과물일 것이다. 비대면은 이러한 눈동자 마주침을 제약하면서 교수로서의 자존감도 많이 떨어져 간다. 화면 속에 갇힌 자신과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서 답답함과 고립감을 경험하는 일은 아직도 나는 힘겹다.
그래서 대학의 문이 하루빨리 열렸으면 한다. 익명성의 가면과 부자연스러움을 이제 벗고 모두가 강의실에서, 캠퍼스에서, 연구실에 여유있게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다음 학기는 신입생 오티, 예비학교, 엠티가 열리고, 5월 축제를 즐기는 학생들로 가득한 캠퍼스를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