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학과와 나
- 작성자 장영호 (2011 입학)
- 작성일 2021-10-14
- 조회수 1840
2011년 입학 이후로 2021년 지금까지 교육학과에 소속되어있는 저에게 교육학과란 현재 생활하고 있는 공간이라는 의미와 성인 이후 저의 정체성을 형성한 공간이라는 의미가 있는 곳입니다. 선택의 순간마다 현실과 우연이 겹치며 한 공간에서 10년 넘게 지내고 있음이 저 자신도 신기한 요즘입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저는 학과에 애정이나 소속감이 크지 않은 학생이었으니까요.
학부생 때는 입시에서 합격의 기쁨을 준 학교이자 학과였으니 처음에는 고마움을 느꼈지만, 진로와 취업을 생각하면서 소위 말하는 현실 속에서 그에 맞는 전략과 준비 과정을 거치며 20대 초중반 잠시 거쳐가는 곳 정도로 생각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글을 쓰면서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니 오래 머물렀음에도, 가장 자유롭고 낭만적일 수 있는 시기인 20대를 보낸 곳임에도 추억이 참 없는 것 같네요. 수업과 과제를 마치면 알바나 취미 등 개인 시간을 보내기 바빴고 선후배, 동기들과는 학교생활을 유지함에 있어 불편하지 않도록 적당히 가깝게 지냈던 학생이었습니다. 지나고 보니 현실을 쫓겠다던 생각들이 생활의 시간, 공간을 느끼지 못하게끔 만들며 추억이 아닌 고민과 걱정만 쌓게 된 건 아니었나 싶습니다.
먹고 살 궁리만 하며 학과가, 전공이 밥 먹여주는지 따지며 지내느라 제가 느끼지 못했을 뿐 교육학과 참 따뜻한 곳입니다. 그래도 선후배, 동기들은 수업 팀플을 함께하며 저의 학교 생활에 실질적으로도 마음으로도 큰 도움이 되었고, 제자의 그런 고민도 기꺼이 들어주시는 교수님들도 계시니까요. 그렇게 제가 학과에 마음을 두게 될 즈음 20대 중반까지의 제가 고민하면 ‘현실적 삶’이 오히려 더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자각을 시작했습니다. 미래를 위한다는 전제하에 현재의 즐거움을 포기하는 것과 그 과정에서 주변에 대한 고마움을 망각하고 챙기지 못하는 이기적 삶을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끝에 제가 목표로 하는, 이를테면 취업‧임용 등 성취하고자 하는 바가 생각하는 만큼 매력적인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들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저의 현재 상황을 돌아보기 시작하면서 그에 기반하여 미래를 다시 생각하였습니다.
그런 고민을 할 때쯤이 3학년쯤이었던 것 같네요. 나름 고학번, 고학년이 되었으니 대학에서 어느 정도 배운 것 같은데 누군가 ‘교육학이 무엇인지?’, ‘학교, 학과에서 뭘 배웠는지?’ 물어보면 대답할 말은 없고, 그런데 그 시간 동안 저는 교육학과에서 교육학만 배운 사람이고. 교육학이라는 전공이 저의 미래와 무관하다 답할 수도 없던 것이 우선은 임용 준비를 멈춘 시점이었기 때문에 확정된 진로 계획이 없었고, 진로와 무관한 전공을 유지한다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싶었으니까요.
식상한 표현일 수 있겠지만 현실을 쫓으면 현재를 잊고 살고, 현재를 살고자 하니 현실이 명확해진 것 같습니다. 당시의 상황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나씩 챙기니까 고민도 덜어지고 할 일도 명확해졌습니다. 수업과 과제도 학점 때문에 마지못해 하기보다 제가 하고 싶은 바와 연결하여 생각해보고, 학교 끝나면 선배들이랑 술도 털어 넣고 고민도 털어놓고. 교육학이 무엇인지 잘은 모르지만 주어진 하루하루를 지내다 보니 이전까지 이상적인 이야기로만 느껴졌던 교육학에서 우리 사회의 문제가 보이기 시작하면서 저에게도 현실로 다가오게 되었습니다. ‘나답게 살라’는 가르침 따라서 ‘나다움’을 실천하려 하니까 또 배운 게 교육학뿐이라 교육학에서 말하는 ‘나다움’, ‘인간다움’을 고민하지 아니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저라는 개인에게서도 저를 둘러싼 사회와 현실에서도 교육학은 꽤 의미 있는 학문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 즈음 교수님들께서 연구 경험을 제공해주신 덕분에 교육학의 실질적 가치와 의미도 알 수 있었고, 대학원 재학 중인 선배들과 어울리면서 대학원도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곳이구나, 후배 술 한 잔은 사줄 여유는 있는 곳이구나 등을 느낄 수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대학원에 진학하여 학사, 석사, 박사까지 어느덧 서른이 넘은 나이, 저는 여전히 교육학과에 소속되어 지내고 있습니다. 가끔은 예전처럼 현실이 두렵고 힘든 순간이 있긴 하지만 부족하디 부족한 제 논문을 따스한 눈길과 손길로 지켜봐주시고 어루만져주시는 지도 교수님들의 은혜로움을 느끼다 보면 책 한 장, 글 한 줄 더 쓰게끔 집중하게 됩니다.
교육학 전공자로서의 삶을 살기 위해 노력 중인 저에게 교육학과는 제가 정체성을 형성한 공간이자 그럴 수 있도록 많은 사람들로부터 도움받은 곳, 그리고 여전히 그 과정이 진행되는 공간입니다. 교육학과의 40주년을 축하하고 그 시간 동안 학과의 발전을 위해 노력해주신 교수님들, 동문들께도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